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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사보) 애플은 왜 음악 사업에 뛰어들었을까

하나금융그룹 사보 Go Beyond 게재 컬럼

February 20, 2022

최근 애플이 역대 최고의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2021년 438조 원 매출에 순익 112조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3%, 65% 성장한 결과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제품 카테고리별 매출 비중입니다.

한때 애플의 대표 제품이었던 아이맥(iMac)은 이제 매출의 10%도 차지하지 않습니다. 반면, 아이폰과 서비스 부문을 합친 비중은 73%로 압도적입니다.

글 | 조용호(더이노베이션랩 대표)

Step 1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혁신의 아이콘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은 1970년대 개인용 컴퓨터 ‘애플Ⅰ·Ⅱ’를 세상에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IBM이 1981년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했다는 기쁨도 잠시, 막강한 경쟁자의 등장과 애플 Ⅲ의 실패가 겹치면서 스티브 잡스는 해임되었습니다. 게다가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IBM의 PC용 운영체제인 ‘윈도우 95’를 출시하면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애플은 컴퓨터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운영체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넥스트(Next)를 인수했습니다.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회사의 전략과 무관한 수많은 프로젝트와 방만한 제품 라인업을 정리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습니다. 컴퓨터 제품군도 일반용과 전문가용, 노트북과 데스크탑 4개로 축소했습니다. 동시에 애플은 과열된 컴퓨터 산업이 아닌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다소 엉뚱하게도 음악 산업이었습니다.

Step 2

컴퓨터가 아닌 음악 사업에 던진 승부수

애플이 주목한 것은 MP3의 대중화였습니다. 음악을 CD가 아닌 컴퓨터에 저장해서 듣는 트렌드에 맞춰 2000년 3월, 음악 재생관리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iTunes)’를 출시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애플은 음악플레이어 전문기업인 사운드 잼을 인수하고 개발자들을 애플의 전담 조직으로 흡수했습니다. 덕분에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아이튠즈를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행보는 자연스럽게 MP3 플레이어로 이어졌습니다. 애플은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였기에 이 역시 도시바가 만든 대용량 하드디스크를 활용하고 자체 운영체제가 있었던 포털 플레이어 사와 초기 아이팟(iPod)을 공동개발했는데요. 2001년 10월, 399달러로 출시된 아이팟은 6개월 후 2세대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한 해에 판매한 아이팟이 무려 34만 대가량. 덕분에 컴퓨터 산업 경쟁이 매우 치열했던 2002년에도 애플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Step 3

디지털 음악 플랫폼 구축을 위한 마지막 걸음

MP3를 위한 소프트웨어(아이튠즈)도 개발했고, 애플만의 하드웨어(아이팟)도 히트했습니다. 다음 수순은 아이튠즈에서 바로 음악을 구매할 수 있는 유료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 즉 뮤직 스토어(Music Store)를 만드는 것입니다.

당시 음반회사들은 개인 간 불법 음악 다운로드를 조장하던 냅스터(Napster)와 소송 중이었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P2P1) 업체가 계속 생겨났고, 음반산업 전체의 매출은 8%가량 줄었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지만 5대 음반사(소니, 유니버셜, 워너, BMG, EMI)는 내부적으로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니는 유니버셜과 프레스 플레이(Press Play)라는 온라인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했고 나머지 음반사는 리얼네트웍스와 뮤직 네트(Music Net)를 공동 설립한 상태였습니다.

1) P2P

Peer to Peer의 줄임말로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클라이언트 컴퓨터끼리 직접 통신하는 방식을 통칭한다. P2P 프로그램을 이용한 불법 공유가 퍼지면서 오프라인 콘텐츠, 그중에서도 음반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스티브 잡스는 불법 다운로드의 늪에 빠진 음반회사의 상황과 50만 대의 판매를 기록한 아이팟의 이점을 내세워 직접 협상에 돌입했고, 2003년 4월 20만 곡의 리스트를 보유한 뮤직 스토어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합법화된 음악 다운로드 시장을 70% 점유하고 출시 후 1년 내 8,500만 곡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아이튠즈와 아이팟, 뮤직 스토어로 이어지는 디지털 음악 플랫폼 구축은 애플에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이튠즈가 세상에 나오고 4년 후 애플 내에서 아이팟과 뮤직스토어의 매출 비중은 19%로 늘어난 반면 아이맥의 매출은 28%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애플이 컴퓨터라는 한정된 산업만 고수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장에는 어떠한 경계도 없음을 알고, 해당 산업지형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낸 덕분에 애플은 컴퓨터에서 디지털 음악,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영역을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Step 4

모든 것을 바꾼 혁신, 아이폰의 탄생

애플의 다음 도전은 혁신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아이폰(iPhone)입니다. 사실 애플은 아이팟을 뮤직 플레이어보다 더 큰 시장인 휴대전화 시장에 도입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 산업이 날로 팽창하던 2005년, 모토로라와 협력해 아이튠즈를 실행할 수 있는 락커(ROKR) 폰을 출시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외부와의 협력을 통한 휴대전화 개발에 실패하자 애플은 아이팟의 기능을 그대로 포함한 휴대전화를 자체 개발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 월드 행사에서 “가끔씩 모든 것을 바꿔 놓는 혁신적인 제품” 아이폰을 공개했습니다. 이후의 상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아이팟은 자연스럽게 아이폰에 뮤직 플레이어의 영역을 내주었고 아이튠즈는 계속 미디어의 영역을 확장하다가 2019년 뮤직, 팟캐스트, TV로 분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애플이 처음 아이튠즈 플레이어를 개발할 때부터 마지막 단계인 뮤직 스토어까지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점은 항상 지나고 나서야 돌아보며 연결할 수 있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MP3의 대중화와 음악 소비방식의 변화에 주목한 애플의 첫걸음이 지금은 전체 자체 매출의 90% 이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건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고 장기적 구상과 중기적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글 | 조용호 더이노베이션랩 대표

더이노베이션랩을 운영하며 경영 컨설턴트 겸 이노베이션 코치로 10여 년간 기업 혁신 워크숍과 코칭을 진행해왔습니다. 2013년 저서를 통해 빅블러(Big Blur) 개념을 처음 제시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비즈니스 모델 혁신, 플랫폼 사업 전환, 신성장 사업 개발 등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플랫폼 전쟁≫ ≪당신이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 ≪비즈니스모델 젠≫ 등이 있습니다.